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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조 | A5 | 39p | 내지-미색지 100g, 표지-아트지, 유광코팅 |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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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종의 전환을 이뤄 영생을 살게 된 제멜바이스, 그가 우연히 만나는 장명종, 그리고 그가 즐길 ‘맛있는’ 케이크.

성 파블로프 재단 인재관리팀 소속의 마도학자가 초자연자 흡혈귀의 감염에 죽지 않고 살아 남아 혈통의 절반이 변해 희귀한 감염종 마도학자가 됐다는 소식은 재단 내부에서는 당연히 떠들썩한 소식이었다. 그 바깥, 재건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제멜바이스의 전환이 입에 담을만한 일도 되지 못했지만, 누군가의 입에서 직접 퍼져나간 흔치 않은 칭찬과 태도 때문에 몇몇 ‘존재’들은 제멜바이스를 알게 되었다.

그 제멋대로에 다른 동족보다 더 오래 살고 있는 흡혈귀가 직접 ‘선택’한 것도 모자라, 발렌티나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 전환을 이뤄냈다니? 재단과 재건의 손, 두 집단 모두 속하지 않았던 장명종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그래 봤자 원래도 그 쳇바퀴 같은 작은 재단 우리 속에 잘 훈련된 단명종이었으니, 볼 일도 없을 것이라는 비꼼도 있었으나, 마도술이라는 아주 작은 야망 하나로 스스로 재단으로 들어간 것만큼 나가는 것도 쉬운 이였다.

이제 감염종 증상에 자유로운 제멜바이스는 재단이 마음껏 부려 먹지 못했다. 오로지 ‘협력 의뢰’처럼 보상이 뒤따르지 않으면 세계 평화를 위한 무조건적인 봉사와 헌신은 거절되었다. 그러나 제멜바이스는 해왔던 대로, 원하는 걸 손에 넣기 위해 ‘거래’를 하며 살아갔다. 그 밖에도 들리는 소문으로는 타임키퍼의 부탁만큼은 아무런 보상과 이유 없이도 도와준다고 하지만, 장명종들의 눈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요점은 갓 태어난 것과 다름없는 어떤 감염종은 영악한 욕심쟁이인 동시에 장명종이 재단의 망에 걸리지 않도록 눈감아줄 수 있으며, 또 걸핏하면 세뇌하려 드는 재건의 영향력 밖에 있는 존재였다.

그들, 장명종들은 늘 날파리처럼 자신들의 존재만으로도 수렵하려 드는 재단이 성가셨다. 죽은 듯이 살아가지 않으면 재단은 장명종을 늘 찾아내고, 팀 하나를 통째로 보낼 정도로 잡는 것에 진심이었다. 이런 재단과 멸종위기종으로 자신들을 몰고 간 세상에 환멸이 나 재건의 손 일원이 되어 세상을 망가뜨리는 장명종을 제외하고선, 그저 자신들의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장명종들은 재단과 재건 모두 원치 않았다.

발렌티나가 아무리 스쳐 지나가는 계절처럼 그의 이름을 먼저 꺼내고, 가볍게 웃으며 털어두는 게 고작이라 한들, 그를 50년 넘게 알고 지낸 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제멜바이스의 존재가 얼마나 값어치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따라 재단을 나갔음에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의뢰에 대해, 제멜바이스는 발렌티나를 자연히 떠올렸다. 그게 아니고선, 흡혈귀처럼 일반적으로 마주치기 힘든 장명종들 모두가 어떻게 자신을 알고 찾아오는지.

제멜바이스는 자신이 어디에 있든 매번 보내오는 누군가의 안부 편지를 불태우고, 임시 쉼터를 옮길 준비를 했다. 종종 버틴의 가방 속에서 지내게 된 로렐라이에게서도 편지가 오는데, 꼼꼼히 보관하며 답신을 보내는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