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삭절 축제의 시작과 끝으로, 꼬여버린 실타래 같은 사연이 굽어지고 처음처럼 빳빳하지 않더라도 원래의 모습으로 풀어진다. 그리고 그것들이 타이포그래피를 이뤄 크레딧 화면처럼 위로만 올라갔다. 이야기의 쉼표나 마침표가 줄줄이 붙여지는 와중에, 로거헤드는 물음표를 들고 콘스턴스 스콧의 병실을 찾았다.

그러나 첫 번째 방문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 병문안은 실패로 끝났다. 어딘가 익숙한 인상의 의사가 알려준 대로 로거헤드는 계속 직진을 했고, 처음 마주친 모퉁이에서 반대 방향으로 돌다가, 두 번째로 마주친 모퉁이에서도 다른 방향으로 꺾은 덕분이었다.

결국 병실의 이름 하나하나를 살펴보다가 겨우 마지막으로 남은 방 앞에 섰을 때 로거헤드는 면회 금지 소식을 그 앞에 난처하게 서 있는 간호사에게 전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네? 왜요? 로거헤드가 인물 한 명에서 그 안쪽의 공간까지 시점을 옮겼다. 복도 측 창문이 어떤 이유로 박살났는지 몰라도 ‘접근 금지’ 테이프로 반경 1m 현장을 둘러싸여 있었다. 이게 아까 그 소리였나? 병실과 병실 사이를 헤매며 들려온 소음은 누군가 유리잔을 복도 바닥에서 깨뜨린 수준이 아닌 모양이다. 조심스럽게 그 파편 사이의 기묘한 빛을 내는 유리 꽃병 조각을 줍는 직원의 표정이 한없이 진지하다.

많은 사람들, 중무장을 한 보안 직원이나 체크무늬 제복 차림의 재단 직원 등으로 형성된 무리 가운데 파묻혀 있는 환자나 어리둥절한 채로 다른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현장의 증인 중에 제게 방향을 알려준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로거헤드는 인파 때문에 볼 수 없었다.

조사를 받는다고 들었지만 이렇게 심각한 일이었었나?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친구라는 관계가 다시 깨끗하게 기록되지 않은 필름으로 되돌아가긴 했어도 저주받은 필름과 관련된 사고는 셔훠 퍼레이드와 잘 맞물려 뉴스에서는 해프닝 정도의 보도로 그친 일이었다.

누아르도, 양월이나 기성, 키 큰 경찰 아가씨⋯포이티에 경관 등등 등장인물 전원이 아무도 다치지 않은, 그야말로 영화의 해피엔딩이었다. 험도수 강량과의 이별만 제외하자면 그랬다.

그리고 이제 크레딧 말고도 쿠키 영상에 등장인물의 속마음을 터놓은 대화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로거헤드는 자신의 철제 몸을 움직여 좀 더 병상에 앉아 있는 이의 상태를 보고 싶었으나, 시야는 온통 쉽게 움직일 것 같지 않은 타인의 뒷모습이 고작이었다.

스콧, 스콧! 너 괜찮아? 로거헤드는 정숙한 태도의 면회객보다 또 무언가 일이 생긴 친구가 걱정된 의식 각성자였다. 조용하지 못한 스피커 소리나 영사기와 보조적인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방 안에서 볼일을 보는 이들의 시야와 고막을 사로잡는다.

직원뿐만 아니라 온갖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당사자까지 문 앞에 기웃거리는 로거헤드를 쳐다봤다. 자신의 렌즈로 다양한 눈길이 한 점처럼 모이자 로거헤드는 부끄러운 듯 영사기의 수동 벨트를 만지작거리다가 병실의 주인에게 손을 흔들었다. 한숨 소리가 난데없이 나타나 안부를 묻는 누군가의 음성 스피커처럼 크고 기다랗게 가득 찬 병실을 채웠다.

"그냥 쟤한테 물어보시라고요. 지금 상황은 저도 모른다니까요?"

기억이 안 난다는 대답을 수차례 반복하다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의식 각성자의 등장으로 스콧은 확실히 선을 그으려 했다. 마스크를 쓴 직원은 스콧이 턱을 까딱하며 언급된 인물을 흘겨봤지만, 다시 눈앞에 용의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도 환자의 의견을 이해했는지, 일단 알겠다는 듯 짧게 다음 소식과 조언을 전달하고 병실을 떠났다. 이번 일로 재판이 진행될 것이며, 처벌을 조금이나마 줄일 의향이 있다면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 짓지 말라는 말에는 무심한 업무 처리의 태도가 은근히 드러나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해도 잘 마무리됐는지 방 안의 사람들은 다시 한번에 스콧의 병실에서 우르르 빠져나갔다. 바닥에서 특정한 조각을 줍던 이도 샘플 채집용 상자를 들고 함께 나가버린 덕분에, 로거헤드는 피곤해 보이는 간호사를 향해 두 손을 꼭 맞잡고 머리를 들이댔다. 잠깐만이라도 안 될까요, 네? 코앞까지 성큼 다가와선, 작지 않은 부피의 영사기나 사정사정하는 스피커 속 목소리, 딱딱한 철제 손 때문인지 몰라도 간호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10분 정도의 면회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로거헤드는 간호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야 좀 쉴 수 있겠다고 등받이에 늘어진 용의자 및 환자인 콘스턴스 스콧은 제 옆에 의자를 끌고 바짝 앉아 온갖 말을 하기 시작하는 레이섬이 뭐라고 말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스콧, 진짜로 왜 그랬던 거야, 응? 몸은 괜찮아? 기다리다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말을 가로막고 답답한 속마음을 담아 소리쳤다.

“정말 미치겠다고, 레이섬! 이 바보 멍청이, 로거헤드야! 우리 사이에 이제 남는 게 없는데, 왜 자꾸 날 건드려, 왜!”

진심으로 분했는지 이불 위에 꽉 쥔 주먹이 부들거렸다. 숨길 것도 없는 최악의 관계로, 처음보다 못한 수준으로 떨어졌는데도 얘는 왜 이러는 걸까? 더 막 나가는 성격이었더라면 그대로 로거헤드에게 주먹을 휘둘렀을지 모르지만, 스콧은 그런 겁 없는 망나니가 아니었다. 저 자신도 겁쟁이와 가까울 것이다. 그 때문에 스콧은 레이섬의 천진난만하며 너무나도 가벼운 기억력과 모자란 성격에 웃고 견디며 악의를 농담처럼 포장해서 ‘텅 빈 머리’라 부른 게 전부였다.

“음⋯. 그냥, 네가 걱정되니까⋯?”

밑바닥을 들켜버린 그때, 목을 관통해서 한마디의 말도 못 했던 고통은 기억을 더듬는다면 금방 떠오르고 남았다. 그것처럼 자신의 말에 날을 세우려면 이제 어떤 욕설을 끌어와야 할지, 스콧은 알지도 못하고 깊이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피곤함밖에 남지 않는다. 처벌 이후의 삶에 벌써 지쳤는지 스콧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